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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언어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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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표현이 가능한 언어는 뛰어나다?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최소의 노력’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합니다. 습득입니까, 제작입니까, 사용입니까? 어느 면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요?
‘최대한의 표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논의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Q의 의도를 짐작해 봅시다.
아마도 Q가 말하려는 것은 ‘어근이 적다. 문법이 단순하다. 음소 수가 적다. 하지만 자연언어 수준의 표현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우수한 언어’라는 뜻일 것입니다.
바로 4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논의입니다. 하나씩 문제점을 꼽아 봅시다.

먼저 적은 어근의 수. 어근이 적을수록 단어 하나 당 길이가 늘어나서 표현이 장황해지게 됩니다.
외울 때는 혹 조금은 편할지도 모르지만 사용할 때는 명백하게 비합리적입니다.

다음으로 문법의 단순함. 이것은 이왕이면 단순하면 나쁠 것이 없습니다. 괜히 라틴어 같은 복잡한 굴절을 만들지 않아도 언어는 충분히 성립합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면 대부분의 경우 1음당 문법적 정보량이 늘어납니다.
예컨대 과거형이 t고 현재형이 r이고 미래형이 s이고 ‘가다’가 go라고 합시다. 이 언어에서는 went, go, will go가 got, gor, gos가 됩니다.
문법이 단순해진 반면 마지막 한 음이 갖는 문법적 정보량이 영어에 비해 많아졌습니다. 이 상태로 마지막 한 음을 못 듣고 놓쳐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영어의 경우 어느 정도 버퍼가 있기 때문에 흘려듣기에 강합니다. 사용할 때의 경우도 생각해서 설계하면 문법을 극한까지 합리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적은 음소 수. 로토카스어에는 자음이 6개, 모음이 5개밖에 없습니다.
음소가 적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발음하기 쉬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음운이 적다는 것은 음의 조합이 적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음절 수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음절 수가 줄어들면 단어의 평균 길이가 늘어납니다. 따라서 장황해지게 됩니다.
또 음의 다양성이 적은 언어에서는 예컨대 s와 z가 같은 음으로 인식되는 등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많은 화자들에게 있어서 간단하기는커녕 오히려 난해합니다. 실제로 ‘사’와 ‘자’가 똑같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감이 오지 않지요.

이상과 같이 습득을 최소의 노력으로 하고자 해도 결국 사용할 때 번거로워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표현이 가능한 언어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습득을 너무 어렵게 해서 온갖 단어를 단순어로 했을 경우 단어의 평균 길이는 짧아져서 운용하기는 편해 보일지 모르나, 이래서는 기계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용하기 어려운 언어가 되어 버립니다.
말하자면 습득과 운용의 용이함을 양립시킬 수는 없으며 시소 게임과 같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딱 균형이 잡힌 위치에 있는 것이 자연언어입니다.
언어에 따라서는 다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는 하나 자연언어는 대체로 균형이 잡혀 있으며 적어도 현저하게 편향되어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인공언어에도 균형이 중요합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표현이 가능한 언어는 뛰어나다는 말은 오류이며, 그러한 작업은 허사입니다. 이 사실은 수백 년 전에 이미 실증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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