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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부터 어휘를 만드려면

먼저 어휘란 그 언어가 가진 모든 단어의 집합을 가리킵니다. ‘단어’의 멋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인공언어의 어휘는 처음에는 비어 있습니다. 텅 빈 어휘에 단어를 많이 집어넣어야 합니다. 즉 제로에서부터 단어를 만들어서 어휘를 부풀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과 수고는 언어의 유형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아포스테리오리의 경우 자연언어로부터 단어를 빌리게 됩니다. 아포스테리오리도 처음 단계에서는 어휘가 제로지만 기계적으로 자연언어로부터 단어를 빌릴 수 있으므로 간편하게 어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에스페란토가 이러한 타입의 언어에 해당합니다. 자멘호프는 라틴어 등의 서양어를 참고하여 에스페란토에 맞도록 어형을 바꾸었습니다.
물론 그 또한 귀찮은 작업을 했습니다. 예컨대 명사는 o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도록 어형을 바꾸는 등의 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아프리오리에 비하면 작업은 훨씬 편합니다. 제로에서부터 어휘를 만든다고 해도 실제 작업은 제작이라기보다 조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단 간편함=엉성함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에스페란토는 국제보조어이므로 친숙한 언어를 참고하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맞습니다.


한편 아프리오리의 경우 단어를 빌릴 상대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어휘를 제로에서부터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의자를 a, 책상을 b, 문을 c……와 같은 식으로 기계적으로 명명해 가는 방법도 있지만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타입의 언어는 수백 년이나 전에 만들어졌지만 사람의 언어로는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언어로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제로에서부터 어휘를 만드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르카의 경우 음상징이라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음상징이란 음이 갖는 이미지를 말합니다.
예컨대 i와 같이 높고 날카로운 음은 작은 것을 연상시키기 쉽습니다. 이것은 청각에 직접 호소하기 때문에 인류 공통의 감각입니다.
일본어에서도 삐-라는 소리가 뿌-라는 수리보다 높은 느낌이 들지요.

단 음상징이 언어에 100% 활용되고 있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大きい’에도 big에도 i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작은 것 전부에 i음을 붙이는 것은 언어적으로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그렇게 해 버리면 작은 것은 모두 i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잘못 듣는 경우도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음상징은 모든 단어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단어나 어근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아르카에서는 날카로운 것에는 pi라는 음상징을 배정했습니다.
‘날카롭다’는 pil이고 바늘은 pind고 주사는 yapi입니다. 뾰족한 것에는 pi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단어들은 음상징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아르카에 익숙한 사람은 pi가 들어있으면 ‘무언가 날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눈치챕니다.

그 외에 e는 물을 의미하는 음상징이고 ki는 변화를 의미하는 음상징입니다.
음상징을 이용해서 조어력이 높은 어근을 만들면 나머지는 그 조합으로 단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아프리오리에서 제로에서부터 어휘를 만드는 데는 대단히 편리한 수법입니다.


이렇게 편리한 음상징이지만 과연 자연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요?
자연언어에 없는 특징을 인공언어에 포함시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혹시 자기가 설계한 언어가 어색하고 쓸모없을지도 모를 리스크를 낳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음상징은 자연언어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예컨대 p라는 음은 ‘팡’이나 ‘펑’같은 파열을 상기시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검증해 봅시다.
일본어의 ‘春’는 옛날에는 ‘パル’라는 발음으로, 이 パ의 부분은 나무의 눈이 트는 음을 상징했습니다. 확실히 p가 파열을 의미하고 있군요. 하지만 일본어만 봐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실은 봄이라는 단어에 p음을 포함하는 언어는 일본어 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봄은 pom이라고 읽습니다.
영어의 spring은 봄뿐만 아니라 용수철 등의 의미도 있지만 어느 쪽도 어원은 같으며 눈이 트거나 용수철이 튀는 데에서 왔습니다. 이것도 음상징입니다.
또 프랑스어에서 봄은 printemps라고 합니다. temps는 ‘때’라는 의미이고 prin의 부분은 영어의 spring과 같습니다. printemps는 말하자면 ‘싹트는 때’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음상징은 자연언어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므로 안심하고 아프리오리 인공언어 속에도 탑재할 수 있습니다.

p가 파열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인류의 공통된 감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것은 별로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이에 음상징을 만들 때는 자의적인 것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르카에서 물을 상징하는 e 등은 이런 타입입니다.

참고로 음상징은 가능한 한 범용성이 있는 의미를 갖도록 합시다.
‘물’이나 ‘날카롭다’나 ‘크다’와 같이 다양한 단어로 발전할 수 있는 넓은 의미를 부여합시다.
결코 ‘공익광고협회’와 같이 지나치게 레어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응용이 일절 불가능해집니다.

범용성이 있는 음상징이 수십에서 백 정도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기본어를 술술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기본어가 완성되면 그것을 조합해서 고급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프리오리도 제로에서부터 어휘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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